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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쌀을 살리려던 한 농민, 국가는 왜 그를 죽였나

- 쌀을 살리려던 농민, 국가는 왜 그를 죽였나
- 해남 민간인 희생사건, 박동열의 이름으로 다시 읽다
- 혐의는 판결이 아니다…국가폭력에 지워진 한 농민

2026-06-03(수) 13:59
사진=국민보도연맹 위령제
[신동아방송 = 박대영 기자]
“쌀을 더 많이 거두게 하려던 사람은 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전남 해남의 한 농민, 박동열 님의 이름 앞에 지금 대한민국 현대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는 거창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무장을 한 사람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위협한 사람도 아니었다. 유족이 기억하는 박동열 님은 일본에서 익힌 농사 지식을 고향 해남의 농민들에게 나누고, 쌀 생산을 늘려 마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살 수 있도록 애쓴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논과 밭이었다. 가족과 마을이었다. 하루 세끼를 걱정하던 농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전후의 해남은 그런 평범한 삶조차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다. 의심은 기록을 앞섰고, 낙인은 재판을 대신했으며,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자리에서 국민의 생명을 빼앗는 가해 주체로 등장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전남 해남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부역 혐의’ 또는 ‘부역 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 등으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 2023년 진화위는 1949년 4월부터 1951년 3월까지 해남 주민 48명이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확인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사과를 권고했다.

이후에도 해남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이어졌다. 2024년 5월 결정에서는 1949년 2월부터 1951년 11월까지 전남 해남에 거주하던 민간인 54명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자의 가족이거나 부역 혐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사건의 가해 주체는 해남경찰서와 관할 지서 소속 경찰로 확인됐고, 진화위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 추모사업 지원, 역사 기록 반영 등을 권고했다.

해남에서 벌어진 일은 한두 사람의 우발적 비극으로 보기 어렵다. 진화위의 결정과 관련 보도자료들은 해남읍, 계곡면, 마산면, 송지면, 현산면, 북일면, 산이면, 옥천면, 삼산면 등 여러 지역에서 민간인 희생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희생자 다수는 농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이었고, 연령대도 청년층부터 고령층까지 넓게 분포했다. 일부 사건에서는 아동과 가족 단위 피해까지 언급됐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혐의’다. 혐의는 확정판결이 아니다. 의심은 유죄가 아니다. 재판도, 방어권도, 변호인의 조력도 없이 누군가를 끌고 가 죽였다면 그것은 법 집행이 아니라 국가폭력이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를 포기하고,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다.

박동열 님의 억울함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유족의 기억 속에서 ‘사상가’나 ‘무장세력’이 아니라 농사를 알고 농민을 도우려 했던 사람으로 남아 있다. 쌀을 살리려 했고, 마을을 살리려 했고, 배고픈 시대에 농민들이 더 나은 수확을 거두도록 애쓴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한 사람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기록과 재판으로 진실을 따지기보다, 의심과 낙인으로 생명을 처리했다.

죽음 이후의 고통도 끝나지 않았다. 유족이 전하는 상처는 단순히 한 사람의 사망에 머물지 않는다. 가족은 가장을 잃었고, 생계의 기둥을 잃었다. 마을 안에서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 살아야 했다. 담벼락에 적힌 반공 구호의 기억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한 가문을 향해 오래도록 남겨진 사회적 형벌이었다.

이 보도는 과거의 이념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더 단순하고 더 엄중하다. 국가는 국민을 재판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 경찰이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해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해서도 안 된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

진화위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식 사과, 피해 회복 조치, 추모사업 지원, 역사기록 반영,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해 왔다. 이는 단순한 과거 정리가 아니다.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기억을 세우라는 요구다.

박동열 님의 이름은 이제 한 가족의 슬픔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이름은 해남의 논과 마을, 그리고 한국 현대사가 감춰온 질문을 우리 앞에 다시 세운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일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명예는 누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박동열 님의 죽음은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는 일은 현재의 책임이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밝히는 것은 한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며, 동시에 국가가 다시는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박동열 님은 이제 ‘이념의 이름으로 지워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국가가 사과해야 할 국민이다. 역사가 기억해야 할 민간인이다. 그리고 후손들이 진실의 이름으로 되찾아야 할 한 사람의 이름이다.
박대영기자 dypark@sda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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