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방송전남여수=김기남 기자] 해마다 광복절이면 우리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바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광복 81주년을 맞은 지금, 이미 세상에 알려진 이름뿐 아니라 역사의 그늘 속에 묻힌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해방 이후에도 미처 바로잡지 못한 역사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다.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지난 6월 공포했고, 오는 12월 2일 법 시행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
이러한 국가적 움직임은 우리 지역에도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수의 독립운동 역사를 얼마나 온전히 찾아내고 기록했는가.
여수에서도 일제강점기 3·1운동을 비롯해 학생 항일운동과 다양한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역사서술 속에서 여수의 항일 활동이 개별 인물과 사건 단위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조명됐는지 돌아보면, 기록이 부족하거나 공적을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해 국가의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판결문과 제적부, 오래된 신문 기사와 사진 또는 편지 한 장에 남았을지 모르는 이러한 흔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고 당시의 기억을 전해줄 사람도 줄어든다. 독립운동가 발굴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여수시는 지역 역사학계와 향토사 연구자, 보훈단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단순한 자료수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발굴과 서훈 신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사하고 시 차원의 전담 창구를 지정하여 제보와 자료를 정기적으로 취합해 국가보훈부와 연결하는 절차를 명문화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오는 12월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하면 이에 대한 지역 차원의 준비도 필요하다.
친일재산 여부를 판단하고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다. 그러나 지역의 토지 변동 기록과 인물사, 향토자료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은 지역사회다.
여수시가 관련 자료와 제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국가 조사기관으로 연결하는 지역 협력창구를 마련한다면 국가 차원의 역사 정의 실현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조사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독립운동의 현장을 보존해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베를린 테러의 지형과 유럽 곳곳의 걸림돌 프로젝트는 가해와 희생의 공간을 그대로 남겨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마주하게 한다.
여수 역시 우리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생가와 활동지, 항일운동의 현장을 하나의 역사탐방길로 연결하고 QR코드를 통해 당시의 사진과 기록, 인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가 될 수 있다.
광복 후 8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는 시효가 없다. 오히려 지금이 중요하다.
찾지 못한 이름은 찾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는 기록해야 한다.
광복 81주년, 그리고 국가가 다시 친일 재산 조사에 나서는 올해, 우리 여수시가 친일의 흔적을 바로잡으며, 그 과정을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 수립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해본다.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다. 정부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지난 6월 공포했고, 오는 12월 2일 법 시행과 함께 2010년 활동을 종료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문을 연다.
이러한 국가적 움직임은 우리 지역에도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여수의 독립운동 역사를 얼마나 온전히 찾아내고 기록했는가.
여수에서도 일제강점기 3·1운동을 비롯해 학생 항일운동과 다양한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역사서술 속에서 여수의 항일 활동이 개별 인물과 사건 단위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조명됐는지 돌아보면, 기록이 부족하거나 공적을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해 국가의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판결문과 제적부, 오래된 신문 기사와 사진 또는 편지 한 장에 남았을지 모르는 이러한 흔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고 당시의 기억을 전해줄 사람도 줄어든다. 독립운동가 발굴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여수시는 지역 역사학계와 향토사 연구자, 보훈단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단순한 자료수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발굴과 서훈 신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사하고 시 차원의 전담 창구를 지정하여 제보와 자료를 정기적으로 취합해 국가보훈부와 연결하는 절차를 명문화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오는 12월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다시 출범하면 이에 대한 지역 차원의 준비도 필요하다.
친일재산 여부를 판단하고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다. 그러나 지역의 토지 변동 기록과 인물사, 향토자료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은 지역사회다.
여수시가 관련 자료와 제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국가 조사기관으로 연결하는 지역 협력창구를 마련한다면 국가 차원의 역사 정의 실현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과거를 조사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독립운동의 현장을 보존해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까지 이어져야 한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베를린 테러의 지형과 유럽 곳곳의 걸림돌 프로젝트는 가해와 희생의 공간을 그대로 남겨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마주하게 한다.
여수 역시 우리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독립운동가의 생가와 활동지, 항일운동의 현장을 하나의 역사탐방길로 연결하고 QR코드를 통해 당시의 사진과 기록, 인물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가 될 수 있다.
광복 후 8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역사를 기억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는 시효가 없다. 오히려 지금이 중요하다.
찾지 못한 이름은 찾아야 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는 기록해야 한다.
광복 81주년, 그리고 국가가 다시 친일 재산 조사에 나서는 올해, 우리 여수시가 친일의 흔적을 바로잡으며, 그 과정을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 수립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해본다.
김기남 기자 tkfkddl59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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